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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과 1970년대 인디영화의 정치적 서사

by 니캉내캉95 2025. 6. 4.

인디영화

 

1970년대 일본은 전후 고도성장을 거치며 민주주의적 모순과 냉전체제의 불균형 속에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1968년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이 급격히 확산되며 대학 점거, 반전시위, 체제 비판 등의 움직임이 전국을 흔들었고, 이 시기의 정치적 열기는 영화에도 깊게 투영되었습니다. 일본 인디영화는 주류 상업영화가 담지 못한 사회 현실과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날카롭게 조명하며, 독립적인 영화언어로 그 시대를 기록했습니다.

1. 68혁명의 연장선 – 젊은 세대의 저항을 기록한 영화들

1968년을 전후로 세계적으로 학생운동이 확산된 가운데, 일본에서도 도쿄대 점거, 전공투(全共闘) 운동 등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학내 투쟁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와 정치 권력에 대한 전면적 비판으로 확산되었으며, 영화 역시 이 정치적 열기와 정서를 반영하게 됩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산리즈카(三里塚)》는 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 투쟁을 중심으로 농민과 학생들의 연대를 담았습니다. 오가와는 외부인의 시선이 아닌, 현장 안에서 싸우는 주체로서 카메라를 들었고, 이는 일본 독립 다큐멘터리 사조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작품인 《전공투: 그들이 있었던 시간(全共闘 時代の彼ら)》은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당대 청년들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조명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단지 ‘이념’으로 움직인 존재가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던 한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의 인디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적이며 참여적인 매체로 기능했습니다. 영화는 저항의 도구이자, 그 시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집단적 ‘기억 장치’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형식 실험과 정치의 결합 – 반서사적 접근

1970년대 일본 인디영화는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기존의 관습을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서사 구조를 파괴하고, 시간과 공간의 비약을 통해 정치적 저항의 정서를 시각화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전달 매체가 아니라, ‘사유의 형식’임을 입증하려는 예술적 실험이었습니다. 요시다 기주 감독의 《에로스+학살(エロス+虐殺)》은 정치 운동과 개인의 욕망을 교차 서사로 엮으며, 역사적 인물인 오스기 사카에의 삶과 1960~70년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교차시키는 복합 구조를 취합니다. 카메라는 서사를 직선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사건 간의 연관성과 인물 간의 대화를 반복, 재구성함으로써 관객의 해석을 요구합니다. 또한 **무라카미 류**의 초기 단편 실험영화나 대학 독립영화 서클에서 제작된 **8mm 실험영화들** 역시, 짧은 러닝타임 안에 파편화된 감정, 압축된 분노, 상징적인 오브제를 집약하며 관습적 영화문법을 의도적으로 해체했습니다. 이 시기의 인디영화는 영화관 상영보다는 학생회관, 거리 상영, 운동 현장에서 직접 상영되며, **관객과 함께 분노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적 예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 기존 형식을 깨는 것, 그것이 70년대 일본 인디영화의 본질이었습니다.

3. 국가, 언론, 검열과의 충돌 – 검열을 넘어선 영화적 언어

1970년대 일본 인디영화는 정부 검열과도 자주 충돌했습니다. 상업영화가 영화윤리위원회(Eirin)의 심의 아래 제작되는 반면, 독립영화는 그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내용이나 반체제 표현이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상영 기회 축소, 경찰의 감시, 상영 중지 등 다양한 압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유학생(留学生)》이라는 독립 단편영화는 베트남전 반대와 일본 정부의 동조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고, 제작자는 실제로 정부 기관의 조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도쿄대 영화동아리 ‘시네 아방가르드’에서 제작된 일부 작품은 상영 도중 경찰의 개입으로 상영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검열을 피해가기 위해 일부 감독들은 **상징적 이미지와 시적 내레이션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예컨대 평범한 도시 풍경 위에 들려오는 시 낭독, 흐릿한 필름 속 군중의 움직임, 삐걱대는 기차 소리 등은 직접적인 정치 구호보다 훨씬 강력한 정서를 전달하며 관객의 감각을 흔들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억압을 피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영화가 언어 너머의 정서와 저항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일본 인디영화는 검열이라는 현실 조건을 창작의 한계가 아닌, 새로운 영화적 언어를 실험하는 계기로 전환시켰습니다.

1970년대 일본 인디영화는 단순한 ‘영화 운동’이 아니라, 시대의 저항 정신과 예술적 실험이 결합된 복합적 문화현상이었습니다.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이 영화들은 체제에 대한 비판, 개인의 존재론적 불안, 예술과 정치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정신까지 모두 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다시 이 시대의 작품들을 돌아보는 것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라, 영화가 사회적 변화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